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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단양군 매포읍 이주 30주년을 돌아보며

김상규 단양군 매포읍 부읍장

  • 입력 : 2022.11.02 10: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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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규 단양군 매포읍 부읍장
시멘트 산업으로 유명한 충북 단양군 매포읍이 올해 읍 소재지 이주 3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14일 매포읍 중심지에서 기념행사가 있었다. 이날 행사는 매포읍 주민자치위원회가 주최하고, 매포읍 청년회 주관으로 진행됐다.

먼저 읍민들이 시내를 돌아보는 '매포읍민 한마음 걷기대회'를 시작으로 '매포읍 이주 당시와 옛날 사진 전시회', '매포읍 이주 30주년 기념 식수'와 '기념식과 읍민 노래경연를 겸한 초청가수 공연'이 있었다. 매포읍 주민들은, 매포읍 이주 후 시내에 이번처럼 많은 인파가 모인 적은 처음이라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가슴 벅차고 정말 기분좋은 행사였다고 평하고 있다.

그런데 매포읍 이주는 언제 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려면 매포읍 시내 한가운데 있는 매포 도서관 뜰에 가 보아야 한다. 나는 사실 이주 30주년 기념행사를 앞 두고 매포읍 이주의 역사와 의미를 기록해놓은 문헌을 찾았는데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주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기념 식수(植樹)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매포읍 이주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금석문을 발견했다. 바로 매포 도서관 뜰 커다란 돌에 새겨놓은 '이주 유래비(移住 由來碑)'다. 줄자로 재어보니 가로 3.3m, 높이 3.3m. 정보의 홍수를 이루는 인터넷에도 현대 디지털 문명의 이기에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매포읍 이주의 의의를 커다란 돌덩이에서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 선조들이 천년이 흘러도 알 수 있도록 중요한 기록을 금석문에 새겼듯, 30년 전에도 선조들의 지혜를 그대로 살려 바위에 기록을 남겨 놓은 것이다. 기록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매포(梅浦)는 옛날부터 매질포(梅叱浦)라 불리워 왔고, 지금의 국립여관(國立旅館)과 같은 매질포관(梅叱浦館)이 있어 여기에서 매화매(梅)자와 나루포(浦)자를 따서 매포 (梅浦)라 명명했다.

매포지역은 옛날부터 살기 좋은 고장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하였으며, 고구려때에는 「적산현(赤山縣)」에 속해 있었고,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이르러 북일면(北一面)으로 불리웠으며, 1914년에 북이면(北二面)과 합쳐 매포면(梅浦面)이라 개칭되었고 창말과 신매리를 합친 매포리를 면소재지로 하여 발전되었다. 1976년도에는 낡고 협소한 면청사를 매포리에서 평동리로 이전하였고, 점차 인구가 늘어 2만1000여명이 넘게 되자 1980.12.1.읍(邑)으로 승격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1985년 충주 다목적댐이 건설되면서 매포리를 위시한 우덕, 하괴, 어의곡 등 8개리 520여 세대의 거주주민 2300여명이 관내·외로 이주(移住)해야하는 아픔을 겪었고, 1990년 9월 9일부터 3일동안 220mm의 폭우가 쏟아져 1972년 수해이래 우리 군 최대의 홍수로 기록되는 큰 수해를 만나 매포리 일대와 우덕, 안동, 하괴, 어의곡 등 5개리의 547세대 2241명의 이재민(罹災民)이 발생하고 성신양회공업㈜ 단양공장이 물에 잠기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수해(水害)를 입은 주민들은 수도권 지역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충주댐의 수문을 닫고 물을 가둬 둠으로써 상류에서 불어나기 시작한 물이 흐르지 못하고 역류(逆流)하여 큰 피해가 발생되었다고, 5번 국도를 점거하는 집단 농성을 하기에까지 이르렀고 이로 말미암아 수해 피해 및 사후 조치와 관련한 책임을 지고 당시의 도지사가 경질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 동안 시멘트 낙진(落塵)피해를 입고있던 이 지역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1992년부터 평동리 일대 15만1115㎡에 신시가지를 조성하여 매포, 우덕, 안동리 수해 및 공해 이주민 1163세대 6183명을 집단 이주케 함으로써, 읍소재지가 평동리로 완전히 옮겨져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수 차례에 걸친 생활터전의 변화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새로이 이주 정착함에 따라 잊혀져 가기 쉬운 많은 일들을 이 비에 새겨놓아, 주민들의 애환(哀歡)과 향수(鄕愁)를 달래고 새로운 터전에서 지난날을 회상(回想)하며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옛 정취(情趣)를 더듬어 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이 비를 세우노라. 1998. 6. 단양군수, 매포읍민 일동”

사실 매포읍은 수해(水害)와 공해(公害)의 상처 위에 만들어진 곳이다. 1990년 수해로 인한 이재민과 시멘트 산업 공해로 인한 이주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1970~80년 산업화 시대에 시멘트 생산이 대폭 늘어나면서, 매포리 일대는 시멘트 낙진 피해가 심각했었다. 학창 시절 버스를 타고 매포를 지날 때면, 버스 밖 거리는 온통 회색빛 시멘트가 눈 마냥 수북히 쌓여 있고, 버스 안까지 먼지가 들어와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곤 했었다. 그 뿌연 먼지는 버스가 아스라이 높은 상진대교를 지나 상진 버스 정류장에 정차할 때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어른들은 그 곳에서 시큼한 막걸리 한 사발, 왕 소금을 안주삼아 들이켜고, 운 좋은 어린애는 아버지 옆에서 삶은 계란 하나 목에 꿀꺽 우겨 넣었다. 그 때에야 시멘트 먼지에서 겨우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산업화 시대에는 '생존'만이 유일한 가치였고, 그 외에는 희생을 감내해야한 했다. '환경'이나 '복지'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요즘 단양군과 매포읍은 다른 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인구감소가 큰 골치인데, 그때는 사람들도 참 많았다. 단양군 통계연보를 보면 매포에 가장 인구가 많았던 때는 1975년으로 4204가구에 2만1746명이었다. 반면에 군청 소재지 단양읍은 3629가구에 1만8668명이었다. 매포면이 인구 2만명이 넘어서자 1980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그 때 인구가 2만737명, 올해 10월 현재 5142명이니 4분의 1로 줄은 셈이다.

인생에도 굴곡이 있듯 도시도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다. 시멘트 산업의 성장주기에 따라 인구는 줄었지만, 매포읍은 1992년 지금의 평동(옛 지명 들골)으로 옮겨오면서 깨끗한 도로와 건축물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그렇게 단양군 현대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던 매포읍 소재지 이주 후 벌써 한 세대가 지난 것이다. 30년이 지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매포는 이주세대에게는 삶의 터전으로, 우리의 딸과 아들들에게는 추억과 그리움이 배인 고향으로 익숙해지고 있다.

매포읍민들은'산업화'라는 국가 정책에 따라 순응하며 생존해왔고, 충주댐과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특수성으로 인해 수해의 고통도 수차례 겪어왔다. 그리고 이주의 아픔도 겪어야 했다. 지난 30년! 많은 것을 잃었지만, 또 많은 것을 얻었다. 이제 이주 후 한 세대를 보내면서, 과거와 현재를 냉철하게 직시하는 가운데, 희망찬 지역의 미래를 열어갈 기반을 다져가야 할 때이다. 갈등과 반목보다는 화합과 상생이 지역 공생의 바른 길이라는 것은 오래도록 묵묵히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매포읍민들이 산 경험으로 깊이 체득한 진리일 것이다.

매포읍 이주 30주년을 맞아 기업과 주민, 주민과 주민, 행정과 민간이 더욱 소통하고, 양보와 배려의 문화가 정착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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