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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아픈 손가락

이혜숙 수필가

  • 입력 : 2022.10.31 13:15
  • 기자명 By. 충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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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숙 수필가
장마로 인해 물난리가 나고 태풍이 곳곳을 휩쓸고 간 지난여름. 무던히도 더워 힘들게 하던 세월은 어김없이 또 다른 계절을 내게 보내온다. 꺾꽂이로 심은 국화가 향기를 내 뿜으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힘들었던 시간을 위로하듯 방긋 웃는다.

막냇동생이 왔다. 국화꽃을 사이에 두고 고생하는 동생하고 차 한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가 누나한테 효도할게요”한다. 그 말에 코끝이 찡하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철이 드는가. 한 집에 한 명은 말썽꾸러기가 있다고 하더니 우리 집 막내는 별나기로 유명했다.

청소년기에 지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동생이 친구들하고 땅굴을 파고 아지트를 만들고 놀았단다. 수상하게 여긴 누군가가 간첩 같다며 신고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마을의 유지였고 지서장도 아는 아저씨라서 훈방하고 보내줬다. 엄마를 잃고 하는 방황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만두면 더 할 것 같아 심하게 야단을 쳤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큰 누나가 제일 무섭다고 했을까. 그나마 내 말은 들었기에 더 야단을 친 것 같다.

말썽꾸러기 아니랄까 봐 고등학교 1학년 때 새 사냥을 나갔다가 친구의 오발로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지만,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 탄환이 머리에 박혀 빼낼 수 없다고 했다. 한쪽 눈은 좌우로 움직여주는 시신경이 끊어졌고 걷는데 소아마비 앓은 사람처럼 다리를 절다 보니 걸을 때면 다리를 휘청휘청한다.

어릴 때는 천재란 소리도 듣던 아이였는데 다치고 난 후부터는 비행 청소년 같은 행동만 했다. 말썽이란 말썽은 다 부렸다. 막내였기에 형들로부터 야단도 많이 맞았다. 엄마가 안 계신 자리의 누나라서 그런가. 야단치는 오빠들이 밉고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야단친다고 막내를 감싸고 돌았다. 어쩌면 모질게도 야단치던 것이 미안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머리로는 잘 살아야지 하면서도 늘 옆길로 새는 모습은 아버지와 형제에게 걱정거리였다. 사십에 몽골 여인과 혼인하고도 일만 벌이고 끝까지 하지 못해서 주위로부터 신뢰도 잃었다. 나는 안정적이지 못하고 걱정만 안겨주는 막내의 노후를 걱정하며 나중에는 내가 책임져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막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취직해서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면 폐지를 주워 모으고 또 다른 부업도 한다. 결혼할 때 형제가 모아 마련해 준 아파트는 장모 수술비로 써버리고 월세를 전전할 때 정신 못 차린다고 원망도 했는데 뒤늦게 철이 들었는지 아주 열심히 살고 있다. 직장만 잘 다녔으면 하던 나의 바람에 보답이라도 하듯 걱정될 만큼 열심히 살고 있다.

방황할 때는 답답해서 야단도 많이 쳤는데 건강치 못한 몸으로 너무 많은 일을 하니 그것도 또 걱정이다. 중학교 삼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정이 부족해서인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내 등에 제 등을 기대고 자던 막내. 큰 누나라고 엄마 대신 의지를 했다.

내가 사둔 조그만 아파트에 들어가 살면서 아직도 자기가 의지할 사람은 누나뿐이라며 응석을 부린다. 한 달에 한 번은 누나를 봐야 한다며 오는 막내. 옷에 먼지를 가득 묻히고 오니 우선 샤워를 하라 하고 옷을 빤다. 폐지 줍느라 먼지투성이인 동생이 안쓰러워 집에 갈 때 깨끗하게 입고 가게 하기 위해서다.

여동생 딸인 조카들이 손을 수술하고 회복할 동안 나를 도와주러 집에 왔다. 손을 쓰지 못하는 누나 앞에서도 응석을 부리는 것을 옆에서 본 조카들이 “이모, 삼촌이 아들같이 행동한다.” 하면서 웃는다.

걱정만 끼치지 말고 스스로 자립하고 살기만 바랐더니 이제 효도한단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응석을 많이 부린다. 그러면 어떠하랴. 더 아프지 말고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도 내게는 큰 위안인걸. 가을향기와 복이 함께 온 것 같다.

본인이 글을 쓸 수 있으면 자기 이야기를 써 볼 텐데 재능이 전혀 없으니 누나가 써보란다. 너의 흑역사가 뭐가 좋다고 쓰라고 하냐면서 핀잔을 줬다. 가족에게는 애물단지인데 막내 친구들은 나를 보면 늘 동생을 예쁘게 챙겨달라고 한다. 몸이 장애가 되었어도 친구들이 막내를 좋아하고 챙겨주는 것을 보니 그나마 위로가 된다. 그 애들 마음이 고맙다.

그러던 중, 막내 올케한테서 전화가 왔다. 막냇동생이 일 중독인 것 같다면서 자기 말을 듣지 않으니 형님인 나보고 자제시켜달란다. 장애가 있는 남편이 4시간도 안자고 일한다면서 걱정하는 걸 보니 그 마음이 예쁘고 고맙다.

그러면서 점을 좀 봤으면 한단다. 몽골에도 점 보는 문화가 있나 보다. 한국말 한마디도 못 한 채 왔는데 18년을 지내고 나니 한국말과 한국문화도 제법 잘 알고 사는 모습이 예쁘다.

자식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서로 늦은 나이에 만나서인지 그 복은 없다. 다행인 것은 올케가 남편을 존중하고 최고의 남편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몽골은 모계사회라는데 이젠 완전 한국인이 된 것 같다.

두 사람을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몽골은 돼지고기와 생선은 안 먹는단다. 쇠고기와 양고기를 좋아하는 올케를 위해 쇠고기 식당으로 정하고 식사하는데 내내 동생 걱정한다. 올케한테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동생에게는 무슨 일이든지 부부가 상의하고 의견일치를 본 일만 하라고 단속하고 헤어졌다.

부부의 인연은 천생의 인연이라더니 뒤늦게 만났어도 둘이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보니 천생연분인가보다. 늘 아픈 손가락이었던 막냇동생. 이제 걱정하는 마음 다 내려놓고 둘의 예쁜 모습만 볼 수 있길.

아픈 손가락인 동생이 풍요로운 가을처럼 마음이 풍성하길 바란다. 혈연으로 맺어진 소중한 막내가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아픈 손가락이 아닌 복 짓는 손가락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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